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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수화기를 열 번도 더 들었다 놓았다 한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버튼을 누른다. 벨 소리가 가기 시작한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 엄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다시 목소리가 들린다. “어, 엄마…” “소희니? 소희야?” 수화기 넘어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그래, 소희야, 엄마야.” 그렇게 엄마는 하염없이 흐느끼신다. 내 목이 딱딱해진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하는데 말은 나오지 않고 울음만 나온다. 엄마는 내게 기다림의 전부였다.
어릴 적 보육원 문 앞에서 일주일 후에 데려가겠다던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어린 나에게 그때의 기다림은 공포였고, 절망이었고, 충격이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열흘이 되고 또 그 열흘이 여러 해가 되면서야 나는 엄마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 시절, 어찌나 서러움이 많았던지.
우산에 매직으로 내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써 놓았음에도 비오는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내 우산을 훔쳐갔다. 비 맞는 건 괜찮다. 옷이 젖는 것도 괜찮다. 문제는 수치스러움이다. 차라리 수업 마치는 하교 길이면 괜찮을 텐데, 등교 길에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학교를 가는 건 열 살배기에게는 매우 큰 수치스러움이었다.
그래서인가 보다. 나는 아직도 쓸데없이 우산 사는 습관이 있다. 우리 집 구석구석에는 어김없이 우산들이 숨어 있다. 그렇게 여기저기 우산이 많이 보여야만 나는 마음이 편하다. 아마도 그건 그 시절 상처의 일부 흉터일 것이다.
그때는 얼마나 절박하게 배가 고팠는지 모른다. 나는 어릴 적 책벌레였다. 어쩌면 책 읽는 순간만이라도 배고픔을 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늘 종대 앞에 앉아서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을 기다리며 책을 읽곤 했다. ‘땡땡 땡땡.’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다. 중고생들에게는 큰 그릇의 밥공기가 놓여지고, 미취학 아이들에게는 제일 작은 공기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에게는 종간 크기의 공기가 놓여지지만, 운이 없으면 작은 공기에 밥이 놓여지기도 한다.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은혜로운 아버지 참 감사합니다.” 우리는 눈을 감고 식사기도 노래를 한다. 그러면 그 사이에 밥그릇이 놓여진다. 나는 눈도 감고 노래도 하지만 속으로는 애타게 기도한다. ‘하나님 제게 작은 밥그릇이 놓이지 않게 해주세요.’ 노래를 마치고 조심스럽게 눈을 뜬다. 내 앞에는 작은 밥그릇이 놓여져 있다. 나는 눈물이 핑 돈다. ‘이 그릇의 밥은 다 먹어도 안 먹은 것처럼 배가 고픈데….” 하기는 그 시절 그곳에서 나만 그렇게 기도를 했겠는가.
그 배고픔과 서러움의 상처들이 엄마의 목소리와 함께 내 속을 치밀고 올라온다. 나는 기어이 실성한 사람처럼 울부짖고 만다. “엄마! 엄마 날 왜 버렸어? 응? 왜 버렸냐고!” “소희야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엄마라고 너 그렇게 보내고 편히 살았겠니? 나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 “어쨌든 날 버렸잖아!” 나도 엄마도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나는 그때까지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날 버렸지만 나는 엄마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음을 어린 나이였음에도 알았기에 나는 엄마를 용서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힘들게 연락처를 알아내 내게 연락한 엄마에게 매정하게 연락하지 말라며 전화번호도 바꾸고 이사도 해 버리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했다. 나는 참 모질고 독했다. 하지만 모질고 독해서가 아니라 가슴이 너무 아파서 그렇게 해야만 견딜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아픈 시간들을 살아오면서 참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리도 절박하게 항해하던 내가 하나님이라는 등대를 만났다. 그랬다. 그때 만난 하나님은 난파선 같았던 내게 희망의 등대였고 내가 살아내야 하는 이유였다. 참 많이도 울었다.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었음이 그저 감사했고, 처음부터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었음이 날 감동하게 했다. 내가 아팠던 것보다 더 아프셨을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조금씩 따뜻하게 변화시키셨다. 그리고 그 따뜻함이 나로 하여금 엄마를 되뇌이게 했다. 평생을 보지 않으리라던 독한 마음이 나 이상 고통스러웠을 엄마의 고통이 되어 내 명치를 아프게 했고, 그 아픔이 엄마에게 다가서는 용기로 나를 이끌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서야 비로소 엄마에 대한 내 미움과 원망과 분노가 엄청나게 컸음을 알았다.
얼마나 울부짖고 얼마나 비수의 말을 엄마에게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얼음장 같던 내 속이 그렇게 하염없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만신창이 같던 내 상처들이 하나님 안에서 회복되어지고 있음을….
그 상처들이 있던 자리 구석구석을 비집고 하나님은 거기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뿌려 주셨다. 이제는 내 몫이다. 용기를 내고, 희망을 갖고, 내 하나님처럼 사랑하며 살려고 한다. 부족함 많은 내가 늘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출처: 시조, 글/소희 (필자의 부탁으로 가명을 사용하였음.)